<위스키디아>, 김지호
술을 좋아한다. 술을 자주 많이 마셔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이 자주 마시는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내가 술을 잘 마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잘 마신다는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의 주량은 소주 1병 정도이다. 나는 술이 늦게 올라오는 타입이다. 소주 1병 이상을 급하게 마시면 다음 날 거의 하루 종일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 부류인 것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나는 정말 술을 좋아하는 것일까. 술을 마시며 먹는 안주를 더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안주와 어울리는 술을 좋아하는 것일 거다. 술이 아닌,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즐거운 술자리는 술을 마실 핑계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함에도 술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술은 거의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인데, 위스키는 유독 좋아하기 힘든 술이었다. 우선 술을 가장 열정적으로 마신 20대에는 돈이 없었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친구들과 만나 돈을 모으면, 비싼 양주를 먹기에는 우리는 모두 가난했다. 그리고 도수가 상당히 높은 독주에 가까운 그 맛은, 소주를 한 잔 넘기거나 시원한 맥주를 꿀꺽 꿀꺽 마시며 내뱉는 "캬야~" 소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꽤 오래 전 누나 가족이 해외 여행을 다녀오며 사다 준 위스키도 몇 잔 마신 뒤 어딘가에 넣어 두었다가, 정말 마실 술이 없을 때 한 두 잔 먹긴 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잘 줄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하이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하이볼 제조법을 보고 그냥 집에서 밥 먹다 생각나서 만들어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결혼 전에 일본에서 마셨던 하이볼의 좋은 느낌을 이제서야 되살린 듯 했다. 그래, 난 하이볼을 좋아했었더랬지. 그 뒤로 위스키를 좀 찾아 보게 되었다. 누나가 선물 해준 위스키도 하이볼로 거의 다 먹었을 때 찾아 봤는데, 꽤 비싼 위스키였다. 누가 봤다면 그 좋은 술로 하이볼 만들어 먹었다고 뭐라 했을지 모르겠다.
술은 마시면 사라지기에 수집할 생각을 애초에 하지 못했었는데, 최근에 하이볼을 먹다 보니까 위스키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수집을 해 볼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술은 마시는 거지, 모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정말이다(아내와 딸은 믿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광고를 통해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책은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칼럼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위스키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위스키에 대한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서 위스키에 더 흥미와 관심이 생기고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위스키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것 같다. 특히 경험적인 부분들에서 전해지는 이끌림 같은 것이 특별했다. 뭔가 농후했다고나 할까. 설명하는 위스키의 맛을 정말 궁금하게 만드는 특별함이었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탓도 있겠지만 글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초보도 아닌 입문자 이기에 전달하는 정보들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위스키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얼마 전에 읽은 하루키의 위스키에 대한 에세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은 같은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 생산 지역에 대한 더 자세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위스키들에 대한 관련 이야기들도 함께 전하고 있어, 정말 그 위스키들을 조금씩 마시면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현재 내가 하이볼 제조용으로 사두고 먹는 위스키는 제임슨이다. 이 책에서도 제임슨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다음에는 하이볼을 만들기 전에 제임슨만 음미해보려 한다. 병 라벨도 한 번 자세히 볼 생각이고 말이다. 제임슨 이후에는 마트에서 어떤 위스키를 집어 들게 될까. 이 책에서 자주 자주 언급하던 피트맛의 위스키를 가장 먼저 찾아 볼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호불호가 있다는 피트향의 위스키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술에 대한 책의 리뷰를 써서 그런가. 그냥 자기에는 너무 아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