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Social Science

<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green_rain 2025. 3. 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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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호기심이든 그 무엇이든 책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사실 원제인 'On Bullshit'만 보면, 그렇게 관심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Bullshit'이라는 단어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어도, 욕설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말처럼 다채롭게 욕을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드물다고 생각한다(외국어를 잘 모르기에). 그런 언어 환경에서 'Bullshit'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눈에 들어올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소리'라니. 이렇게 고급스런 느낌의 표지에(더군다나 양장본이다) 저런 욕설이 떡 하니 박혀 있다니. '개소리'라는 어감과 표지. 그리고 저자의 첫 문장,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처럼, 요즘처럼 '개소리'가 만연하다고 느껴지는 세상에서,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책은 우선 재밌다. 'bullshit'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전적 고찰과 함께, 비슷하게 사용되는 다른 어휘들, 예를 들면 거짓말이나 협잡 등의 단어들과의 차이를 설명한다. 'bullshit'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위치를 철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철학이라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느 철학책들처럼 마냥 어렵지만은 않다. 특히나 개소리가 다른 단어들과 달리 현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읽는다면, 철학을 떠나 사회 현상에 대한 에세이처럼 재밌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원서를 찾아 볼 엄두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이 책은 번역이 참 좋은 것 같다. '헛소리', '흰소리', 우리 어머니 표현처럼 '쉰소리' 등 많은 소리들이 있음에도 '개소리'라는 단어의 선택은, 비속어이긴 하지만, 다른 어떤 말보다 이 책의 'bullshit'에 착 달라 붙는 표현같다. 이 책을 전반적으로 쉽고 재밌게 읽은 이유의 90%는 번역 때문이다. 책에서 옮긴이의 말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옮긴이의 말까지 다 읽었다. 옮긴이의 말도 참 좋았다. 책에 대한 내용으로 써 내려 가긴 했지만, 요즘의 사회 현상들에 대한 옮긴이의 생각을 책의 내용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따로 책을 내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갖게 했다. 

 

  앞에서 언급한 저자의 첫 문장처럼,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 만연함에 내가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오디오가 비는 상황을 잘 못 견디는 타입인지라, 개소리가 많았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어머니의 표현대로 '쉰소리 그만해라'를 자주 들었던 걸 보면, 거의 확실하게 나는 그동안 개소리들을 해 온 것 같다. 내 주변에 미안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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