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선가 추천한 글이나 방송을 보고 구입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오래 전에 사둔 것도 아니다. 비교적 최근에 구입한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책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작가분도 아는 분은 아니었다. 표지나 제목에서도 내 시선을 끌만한 그 무엇은 없었다. 어떻게 구입했는지와 함께, 어떻게 읽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그냥 무언가 읽으려고 책을 잡았는데, 이 책이었다, 뭐 이런 느낌이랄까. 다소 두껍다. 표지의 그림은 책을 읽기 시작한 후에야 호랑이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무채색이나 흰 종이의 느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다. 장르로 따지면 대하역사소설쯤 되려나. 옛날 이야기 듣듯이 읽는 역사서들의 최대 단점은 등장인물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역사 소설 같은 경우는 이름과 호, 관직 등으로 같은 등장인물을 언급하기도 해서, 너무 헷갈리기 쉽상이다. 시대와 상관없이 소설은 등장인물이 머리 속에 그려져야 이야기에 집중도가 올라가는 나로서는, 등장인물이 머리 속에서 엉키기 시작하면 진도를 영 나갈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에서 이 책은 등장하는 인물들과 상관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소설은 재밌다. 재미가 웃게 만드는 그런 재미가 아닌, 책의 두께가 두껍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집중과 몰입이 강할 수 있는 재미말이다. 일본 강점기부터 그 이후 6·25 전쟁 직후 정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그 시절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프롤로그부터 강렬했다. 표범의 뒤를 쫓는 사냥꾼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표범이 아닌 실제로는 호랑이였던 그 야수와의 만남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앞서 말했듯 역사 소설들에는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이 소설 역시 그렇다. '옥희'와 연결되는 '정호'의 이야기로 시작하면 이야기를 풀어가기 쉬울 것 같다. '옥희'와 비슷한 삶이 오버랩 되는데, '옥희'의 전 세대라 할 수 있는 '단이'의 생애가 그렇다. '단이'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는 남성으로 '성수'와 '명보'가 등장하는데, 시대상을 대표하는 각각의 이념을 지닌 인물들이다. 그 플롯이 그대로 다음 세대인 '옥희'에게로 투영되는데, '옥희'의 두 남자인 '한철'과 '정호'가 그렇다. '한철'과 '정호' 역시 그 시대의 이념을 대표하며, 각각 '성수'와 '명보'에게 연결된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에 몰입도가 상당하다.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매 장면이 머릿속에 이미지를 남기곤 했다. 책 뒷표지에 나와 있듯, 이미 영상화가 확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미지가 쉽게 잘 그려진다는 것은 사고의 확장이 제한됨을 의미해서 독서에 바람직한 것 같진 않지만, 그동안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보아 온 영향이 클 것 같다. 그런 의미에 이 책도 조금은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프롤로그의 강렬함이 프롤로그 이후부터는 느껴지지 않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뭔가 통속적인 느낌마저 갖게 되었다. 머릿속에 형성되는 이미지들은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 느낌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내용들이 신선하지 않게 만들었다.
또한 인물들의 관계 형성도 뭔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등장하는데, '옥희'와 '한철'이 사랑에 빠지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그동안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사랑에 빠진 느낌이랄까. 좀 급하고 갑작스러운 전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복선을 암시하는 많은 장치들이 나타나는데, 담배 케이스, 은가락지가 그렇다. 언젠가 어느 부분에서 다시 결정적으로 등장할 느낌을 주는데, 다시 등장하는 그 장면들이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1991년도에 방영한 드라마 중에 <여명의 눈동자>가 있었다. 윤여옥과 최대치라는 등장인물이 여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였다. 어린 시절 본 드라마기에, 전반적으로 내용의 많은 부분들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음에도 그 두 등장인물과 드라마의 일부 장면들이 간헐적으로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드라마가 기억이 났는데, 동일한 시대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이 비슷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의 재미가 일부로나마 남아 있는 드라마를 뛰어넘지 못했기에 아마도 강렬함이 덜했던 것 같다.
올 해는 읽게 되는 책들 중에 소설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소설은 재밌다. 그 중에서도, 조금의 아쉬운 부분들은 있지만, 이 소설은 정말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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