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되게 현실적이다. 읽는 내내 생각했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인데, 뭐가 이렇게 사실적인거야? 그것도 아주 극사실주의 말이다. 서영동은 다른 지역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였다. 등장인물들 또한 하나같이 내가 갖고 있지만 표면화되지 않은 내 안의 다른 모습들이었다. 부끄러웠지만, 나는 안승복이었고, 샐리 엄마였고, 경화인 동시에 희진이었고, 봄날아빠였다. 그래서 소설이 아닌, 내 이야기 같다. 그래서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이런 이야기였을줄은 몰랐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파도가 세게 몰아칠 때, 그 파도에 휩쓸려 만나게 된 작가였다. 너무나 유명한 소설인 동시에, 그 이야기가 마침 첫 아이를 낳은 우리 부부에게 전해지는 이야기 같아서 정말 과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남자인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꺼내기도 어려운 요즘이지만, '페미니즘'을 떠나서, 나는 내 가족과 아내에 대해서,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했었더랬다.
이번엔 집으로 대표되는 아파트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존재일까.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의(衣), 식(食), 주(住) 중에 하나라고 집을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이미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사회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대로 오면서 집은 살(住)아야 하는 것보다는 사(買)야 하는 재화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지가 꽤 되었지만, 하늘 아래 내 몸 하나 누울 곳을 갖춘 사람들은 100%에 미치지 못한다. 누구나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갖는 욕망인 셈이다. 이 책은 그 욕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은 인터넷 게시물로 시작한다. '봄날아빠'라는 아이디로 서영동 아파트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영동 아파트 가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들 이 아이디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모두 '봄날아빠'라는 아이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렇다. 모두가 아닌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봄날아빠일 것이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표현의 차이일뿐 모두가 가진 욕망일 뿐이다.
읽으면서 리뷰를 작성하게 되면 쓸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무언가를 적어보려 하는데 잘 써지지 않는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책 속에 있기 때문일까. 아파트에 대해, 집에 대해, 내 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이야기들 말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적어 갈수록 내가 까발려지는 느낌이랄까. 솔직하면 속물처럼 보일 것 같고, 솔직하지 못하면 내 자신을 속이는 글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글은 여기까지다. 모든 이야기는 책 속에 있다.
'Books > No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3. 송 과장 편>, 송희구 (0) | 2022.04.16 |
---|---|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0) | 2022.03.24 |
<동물농장>, 조지 오웰 (0) | 2022.01.10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0) | 2021.12.10 |
<눈아이>, 안녕달 (0) | 202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