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Novel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green_rain 2022. 3. 2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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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다. 은희경 선생님의 글이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크게 와닿지 않은 말이나 글들이 어느 순가 다가오는 그런 느낌말이다. "너도 나이 들어 봐라." 어머니가 내게 자주 했었던 말인것 같은데, 그때는 그냥 흘러 들었던 저 말들을, 요즘 내가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가끔 할 때 같은, 그런 뜨악하는 느낌이랄까. 은희경 선생님의 소설은, 예전에는 멋지다, 재밌다, 이렇게만 표현이 가능했던 글들이었다. 공감을 떠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주변인들이 하나같이 정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더랬다. 현실을 담은 소설일텐데, 내가 이상한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공감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소설속의 이야기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등장인물의 감정에 오롯이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은희경 선생님의 새 소설집인데, 첫 소설인 <우리는 왜 얼마동안 어디에>를 읽으며, 어 이거 읽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창비의 클러버 활동을 하며 읽은 계간지에 발표되었던 소설이었다. 다시 읽으며 그때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 전 리뷰를 찾아 보지는 않았다.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놀러가서 며칠간 머무는 동안의 이야기이다. 같은 시간의 이야기를 두 친구 각자의 시각에서 그려내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마지막에는 그 시점도 합쳐지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두번째 이야기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장미의 이름은 장미>이다. 수진이 뉴욕의 어학원에서 만난 마마두와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어, 낯선 곳에서 그것도 같은 나라의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사실 국적을 떠나서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와 새롭게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세번재 이야기는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제목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 하며 읽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극작과에 입학한 주인공의 현실적인 도피처가 된 뉴욕. 그곳에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뉴욕이 한국보다 낯설지 않음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이국땅의 낯섦과 따듯한 친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뉴욕도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과 비슷해진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낯설어진다.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 언제까지나 타인을 여행객으로 대하고 이방인으로 만드는 도시였다. 처음에는 환대하는 듯하다가 이쪽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정색을 하고 물러나는 낯선 얼굴의 연인 같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저 표현은 주인공이 느끼는 현재의 뉴욕이다.

 

  마지막 소설은 <아가씨 유정도 하지>다. 주인공은 소설가다. 뉴욕에서 진행되는 문학 행사에 초청되어 방문한다. 방문하면서 동행하기를 원하는 어머니와 함께 하는데, 이 소설은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여행에 가져온 오래 전 미국에서 어머니에게로 발송된 편지를 보면서, 주인공이 어머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공감이 가는 구절 중에 "어떤 헌신은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된다. 시기와 처지에 따라 개인의 욕망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바뀌는 것도 이상했다."가 있었다.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가족에게 어떤 헌신을 강요하고 있었을까.

 

  이 책은 <서영동 이야기>와 함께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둘 다 연작 소설이라는 점,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두 소설을 같이 구매했던 것 같다. 다만, <서영동 이야기>는 연속해서 읽어나간 반면, 이 책은 이야기별로 끊어 읽었다. 이 책의 네 소설이 인물이나 장소 등에서 서로 이어지는 부분들이 있긴 한데,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어서 그랬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야기들이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어서 전반적으로는 재미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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