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같은 의미를 지닌 여러 단어들이 있었을 것 같다. 대표적으로 '이별'이 떠오른다. 그런데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들과 다르게 '작별'이라는 단어만의 느낌은, 뭐랄까, 상실의 느낌이 덜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무언가 헤어짐의 표현인데, 작별이라는 단어의 느낌이 주는 강도가 덜 했다. 더군다나 작별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헤어지는 아쉬움이 없는 제목이다. 그래서 제목이 좋았고, 끌렸다.
역사에 관심이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지나간 일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에 대해 관심이 많을리 없다. 6.25도 그렇고, 5.18도 그렇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제주도 4.3 사건도 그렇고 말이다. 이 숫자들에 부여되어 있는 의미들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과거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도, 기억해야 할 시대의 아픔도, 모두 내 일이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쳐온 이야기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소설로만 읽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 속 병원 등장부터 몸은 얼어 붙기 시작했다. 절단을 봉합하는 병원이었지만, 내 몸의 어딘가가 절단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얼어 붙기 보다는 몸이 꼬이는 느낌이다. 무언가의 불편함이 몸을 지배했다. 어서 빨리 읽고 지나가고 싶었다. 제주도의 이야기에서는 정말 몸이 추웠다. 빨리 읽으며 지나갈 수도 없었다. 인터넷 검색창을 띄워 '제주 4.3'을 검색했다.
이야기에는 빌런이 등장한다. 그 빌런들이 잘못되길 바라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빌런이 잘못되면 좋은 결말로, 반대의 결말이라면 역시 세상은 그렇지, 라고 하며 어떻게든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그런데 빌런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프고 힘든 마음을 풀 수 있는 대상이 없다. 그래서 더 이야기의 진행이 더 힘들고 어려웠던 것 같다.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 것인가.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아프고 힘든 것들은 그냥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먹먹했다. 그리고 막막했다. 뻗쳐 나가는 생각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지 가늠하기 힘들어 막막했다. 작별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바뀌지 않을 것들을 붙잡고 고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현명할 것일까. 작별하지 않는 것일까. 작별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내 몸의 반응은 아마도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고, 관심을 놓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코로나로 힘든 세상이다. 초기에 형성된 집단면역의 기준을 조과한 백신 접종자들이 나와도, 바이러스는 변이되어 나아간다. 사회는 분열되기 쉬운 상황이다. 한쪽으로 피해의 원인을 몰아가기 어렵지 않다. 다수는 소수에게 폭력을 가하기 쉽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무엇이 빌런인지를. 작별하지 않아야 할 것은 기억이다. 그 기억들로 작별하지 않는 것들을 반복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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