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Essay

<허송세월>, 김훈

green_rain 2024. 11. 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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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말을 돌려서 할 필요가 없다. '쉽지 않다'는 말은 '어렵다'는 말과 꼭 같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는 말보다는 '글을 쓰는 일은 어렵다'가 더 정확하고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글이든 정확하고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에둘러 표현하게 된다. 말도 글도 모두 그렇다. 그렇게 말이 많아지고 글은 길어진다.

 

  김훈 작가님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표현이 정확했다. 어떻게든 닮고 싶었지만, 내 습관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고, 선생님의 문장은 멀었다. 선생님의 새 작품, 산문이 나왔다. 글을 읽는 중에 선생님의 글쓰기와 관련된 부분이 있었는데, 내가 닮고 싶은 글쓰기 부분에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이 실려 있었다.

 

"나는 한국어로 문장을 쓸 때 주어와 동사의 거리를 되도록이면 가까이 접근시킨다. 주어와 동사가 바짝 붙으면 문장에 물기가 메말라서 뻣뻣해지지만 문장 속에서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선명히 알 수 있고, 문장이 지향하는 바가 뚜렷해진다. 주어와 동사의 거리가 멀면 그 사이의 공간에 한바탕의 세상을 차려 놓을 수 있지만 이 공간을 잘 운영하려면 글 쓰는 자의 몸에 조사들이 숨결처럼 붙어 있어야 하고, 동사의 힘이 문장 전체에 고루 뻗쳐 있어야 한다." (p. 135)

 

  그랬다. 내 글과 말은 주어와 동사의 사이가 멀었다. 주어와 동사 사이에는 물이 가득 차있고, 한바탕의 세상이 차려진 것도 아니다. 그저 문장만 불명확해지고 문장의 힘도 빠져 나갔을 뿐이다. 글을 쓰는 일이 많지 않지만, 리뷰 쓸 때를 비롯해서 앞으로 글을 쓸 때는 조금 더 주어와 동사 사이의 거리를 고려하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책 소개를 하자면, 딱히 주제는 없다. 소설은 아니고 산문이기에, 선생님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내용 중에 '죽음'에 대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얼마전에 유치원 다니는 딸이, "아빠는 언제까지 살거야?" 라고 물어 왔다.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무슨 철학적인 질문도 아니고, 그저 오빠와 장난을 치다가 물어본 듯 한데,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80? 그렇게 생각하고 무심하게 답을 했는데, "오빠, 아빠는 80살까지 살거래" 하며 뛰어갔다. 딸이 가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80살은 어떤 의미일까, 그 전에 죽음이 다가온다면, 혹은 80살 이후까지 살게 된다면, 하고 생각이 길어졌다. 김훈 선생님의 나이도 비슷하다. 병원에 다니는 소재도 이야기에 간간히 등장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경험담도 나온다. 어떤 의미일까.

 

  그 의미에 대한 물음과 생각들이 계속 이어지다 책 읽기가 끝이 났다. 책장을 덮는데, 제목이 보였다. '허송세월'. 80살이 목표는 아니지만, 공공연하게 목표가 되어 버린 듯하다. 목표를 기준으로,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게 남은 현재이다. 돌이켜 보면 살아 온 날들엔 '허송세월'한 시간들이 많아 보인다. 나머지 살아갈 날들은 시간이 '허송세월'이지 않게 노력해 봐야겠다. 그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물음에 대한 의미가 아닐까.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는 나름 의미를 부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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