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Novel

<승부>, 파트리크 쥐스킨트

green_rain 2020. 4. 2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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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을 먼저 봤을까? <좀머씨 이야기>일까, <향수>일까.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어느 책이었던 간에, 이 작가를 그냥 무작정 좋아하게 되었다. 외국 작가들 중에 좋아하는 작가도 많지 않고, 작품들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외국 언어의 이름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이름도 어려운 파트리크 쥐스킨트와 알랭 드 보통은 정확하게 기억하는 좋아하는 작가이다.

 

  쥐스킨트의 소설들을 모두 읽어 보고 싶은데, 절판이 된 책들도 있었다. 워낙에 유명한 <향수>나 <좀머씨 이야기>는 구하기 어렵지 않으나, <로시니>나 <비둘기> 같은 책들은 구할 기회를 놓치곤 했었다. 그러던 차에 리뉴얼 시리즈가 나왔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참에 읽어보지 못했거나, 구할 수 없었던 책들을 구입하기로 했다. <승부>가 그 첫번째다.

 

  쥐스킨트의 저작 목록을 대충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다작을 한 작가도 아니었고, 모두 읽어 보고 싶어서, 쥐스킨트로 검색한 도서 목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부>라는 책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가장 먼저 구입하지 않았나 싶다. 또 잊어버리고 까먹기 전에 말이다.

 

  쥐스킨트의 작품 중 읽어본 것은 <향수>와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다. <향수>를 제외하면 모두 길지 않은 짧은 내용이다. <승부> 역시 짧은 소설이다. 공원의 체스 챔피언인 '장'에게 하루는 젊은 고수가 등장해 체스를 두는 이야기다. 고수처럼 보이던 도전자는 실제론 하수 중의 하수였다. 그럼에도 '장'을 비롯해 '장'에게 패배한 주변의 관람자들조차도 그 하수가 패배를 예의없게 인정하며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그를 고수로써 상대하며 응원한다.

 

  도전자 스스로 고수임을 인정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풍기는 아우라를 통해 상황들이 그를 고수로 여기게끔 만들었다. 모두가 그 상황을 받아들인 것 뿐이고 말이다. 체스를 모르지만, 수를 보면 그 사람의 실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을 비롯해 구경꾼들 모두 어느 정도 체스를 두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상황을 받아들였고, 상황에 기대를 반영했다. 초심 또한 잃어 버렸다. 구경꾼들 중에 초보가 있었다면 단번에 도전자가 하수였음을 알았챘을 것이다. 스스로를 어느 정도 체스를 두는 반열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초보자의 수가 고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진위 여부의 확인보다는 각자의 기대를 상황에 반영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승부에서 승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기대를 반영해 상황을 왜곡하는 것은 승부에 도움에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부를 빠르게 파악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대와 나의 염원을 사실에 반영하는 순간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나 버린다.

 

  재미난 소설이다. 짧지만 생각해 볼 것들도 많고 말이다. 어제 읽은 상뻬의 그림도 삽화로 들어가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기억난 사실인데, 상뻬의 그림은 <좀머씨 이야기>에서도 만난 적이 있었다. 여러모로 즐겁게 읽은 책이 되었다. 나머지 쥐스킨트의 책들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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