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Essay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green_rain 2022. 1. 2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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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글을 언제부터 좋아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을 좋아해서 한참 읽기 시작했던 20대 중반부터 였을까. 선생님이 돌아가신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랬다.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형이 누워있던 병원의 침상에서 형과 함께 접했었다. 형도 나도 좋아하던 선생님이었고, 선생님의 글들이었다. 선생님의 부고 소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도 하늘나라에 갔다. 그렇게 한동안 선생님의 책들은 선생님의 부재와 형의 부재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선생님 글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내 생활에 변화가 있어 책을 더 적게 읽게 되었고, 소설보다는 다른 장르의 글들을 더 자주 읽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두었던 선생님의 소설들을 중간 중간 보기도 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형의 부재로 연결되는 고리도 끊어져 있었다. 그저 션생님의 글만 오로지 다시 다가오기 시작하는 순간들이었다.

 

  이 책은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던 에세이였다. 최근에 여우눈 에디션으로 새롭게 재출판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서평단을 모집했고, 나는 운이 좋았다. 선생님의 부재가 10년을 넘어가도 선생님은 유명 작가셨고, 인기 작가셨다. 서평단 신청자들도 매우 많았고,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이 있던지라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소장만 해 둔 책을 읽게 되는 운도 따랐다.

 

  읽는 내내, 맞다, 내가 이래서 선생님 글들을 좋아했었구나 싶었다. 뭔가 푸근하지만 내용은 선생님의 소신으로 가득한 날카롭고 정겨운 표현들. 그랬다, 선생님은 글 속에서 여전하게 그대로 계셨다. 선생님의 부재가 얼마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날짜를 찾아 봤다. 그렇게 다시 선생님의 부재는 형의 죽음으로 연결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슬픔이 아프게 다가오진 않았다. '시간은 신이었을까'에서 말씀하셨듯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몫이 가장 클 것이다. 또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것처럼, 그 당시에는 죽음으로 밖에 해결되지 않을 법한 일들도, 어차피 나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읽는 책들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한 개인적인 다짐에서 느낌들을 적어 나가고는 있지만, 서평단 참여는 가끔 고역일 때가 있다. 운이 좋은 것도 잠시, 읽은 후가 좋든 싫든 서평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생님의 글은 읽은 후에 뭔가 남기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뭔가 개인적인 내용들을 너무 드러내게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누가 이 곳까지 찾아와 읽을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민망하고 창피한 것은 감추기 어렵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선생님도 저리 열심히 쓰시는 것을, 나는 어떠했는지. 그저 허튼소리가 없었길, 내 감정에 솔직했기를 바라고 원할 뿐이다. 선생님이, 선생님 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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