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Essay

<슬기로운 좌파생활>, 우석훈

green_rain 2022. 2. 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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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뭔가 의미심장하다. '슬기로운'으로 시작하는 시리즈의 드라마가 있다.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종종 '슬기로운 XX생활'이라는 표현들을 보곤 한다.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듯 한데, '좌파'라니. '좌파'라는 단어가 무슨 금기어도 아닐진대, 가슴이 벌령거린다. 대놓고 표지(그것도 붉은색으로)에, 그렇지만 명랑해 보인다.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한 좌파에 대한 명랑함과 상냠함의 표현이 담긴 제목인 듯 하다. 그래도 놀랐다.

 

  '좌파'라는 단어는 앞에서 말한대로 금기어도 아니고 비속어도 아니다. 그런대로 이렇게 가슴이 두근댈 정도로, 무언가 봐서는 안되는 걸 본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만 갖게되는 특수성이 아닐까 싶다. 현재 40대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좌파'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크진 않았다. 내가 느끼는 그 불편함은 모두 책이나 영화 등에서 접한 '좌파'의 이미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좌파'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모르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이념이나 사상 등에 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에는 나의 10대와 20대는 그저 미숙하기만 했었다.

 

  우석훈님은 <88만원 세대>로 알게 되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이 책에서도 등장하는 비주류 경제학을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기에도 모자란 시간들이다. 그런 와중에 <88만원 세대>는 크게 이슈를 만들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제공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아마도 비주류 경제학으로 유명한 분은, 장하준 교수님과 우석훈님 두 분뿐인 것 같다. 여튼, <88만원 세대>부터 우석훈님의 책들을 읽어 보고 있다. <국가의 사기>도 재밌었고,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크게 공감하며 읽었더랬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좌파적인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본인부터 자신은 좌파라고 이야기하며 시작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좌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저자의 표현대로 좌파 상실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좌파가 없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극단의 보수화가 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은 많은 공감과 함께 우리 아들은 어떻게 성장할지 걱정이 되었다. 또 페미니즘과 관련된 부분들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공감을 했다. 우석훈님처럼 나 역시 페미니즘을 알지 못한다. 어려운 사상이다. 하지만 '남이사' 무엇을 하든 신경을 안 쓰면 되는 게 가장 적당한 해결방법인 것 같다.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개인적인 선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남이사' 무엇을 하든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닌것이다. 내 문제들만 신경쓰기에도 바쁜 세상이 아니던가.

 

  문유석님의 <최소한의 선의>에서도 이 책과 비슷한 의견이 나왔었다. "자유에 대한 제한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국 자유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일견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가치 없어 보이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해도 가벼이 넘기지 말고 일단 그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우석훈님이 말하는 좌파가,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가치 없어 보이는 권리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좌파의 세상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좌파의 세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사라져 우리나라가 유토피아가 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촛불로 새롭게 태어난 이번 정부에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 중 충족된 기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 큰 기대를 갖고 투표에 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기대를 전혀 버려서도 안된다. 무엇이 잘 못 되었을 때는 잘못된 것들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인지들에 대해 목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역할을 우석훈님은 좌파적인 삶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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