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형 교수님의 비교적 최근 책이 유명할 것 같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 나도 읽어보려고 사 두었지만, 아직 읽지는 못하고 있다. 그 뒤에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도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고, 그 사이에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를 구입했다. 하지만 정작 교수님의 책을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제목이 너무 근사했다.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고, 아직은 돌봄이 필요한 나이이기에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지고 길어졌다. 아이들이 한없이 좋기만 해도, 현실 육아에 부딪히고 내 시간이 줄어들면, 그 좋음도 한계에 이를 때가 있다. 한계육아의 법칙이랄까. 그런 중에 이런 멋진 제목이라니. 나는 편지는 고사하고, 말로라도 어떤 말들을 '삶이라는 우주는 건너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김민형 교수님의 책들을 읽지도 않으면서 구입한 이유는 수학때문이다. 숫자 감각이 뛰어나거나 수학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관심이 가고 좋아한다. 뭔가 있어 보이고 똑똑해 보인다고 할까. 아무래도 이과적 머리보다는 문과적 감수성이 더 높은 나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종이에 숫자나 수식들을 적어나가는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형상화된 멋진 이미지 같은 것이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수식들을 접하게 된다. 특히 실증분석에서는 모형이 필수적으로 등장하는데, 그 모형들을 설명하는 수식들이 어렵게 느껴지기 보다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해를 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아니다.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하루 중에 일과로 하셨던 부분들로 종종 등장할 뿐이다. 시나 역사,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데, 방문학자로 2개월 동안 거친 지역들에 대한 여행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여행 기록이 교수님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멋진 제목이지 싶다.
수학자들을 머릿속에 그릴때의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 글 속에 나타나는 교수님은 그런 이미지의 수학자는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한 이 책에 주로 등장하는 시나 역사, 음악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정말 저런 내용들을 모두 기억하고 계시는 걸까. 특히 시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시에 대한 본인의 해석, 시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슈베르트에 대한 애정까지. 수학이 이과를 대표한다고 가정할 때, 문과적 부류인 문학, 음악, 역사 등과의 만남은 내 안의 수학자들에 대한 이미지들을 깨는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책에서도 간간히 느낄 수 있다. 교수님은 뭔가 정형화되거나 경계를 긋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음을 말이다.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신 느낌이랄까. 그래서 받아들이는 폭이 넓으신것 같았다.
삶이라는 우주를 건너는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 많은 아이들이 이미 규격화된 길을 걸어가는 듯한 요즘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길들도 있다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삶이니 그 우주를 잘 건넜으면 좋겠다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안다면, 언제든 그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할 거라고. 현실 육아로 돌아오면, 5살, 3살이라는 나이에게 정형화된 길을 걸어가길 바라는 부모들이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삶이라는 우주를 건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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