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페미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답 뒤에 그딴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페미니즘을 알지 못하기에 페미니스트가 아닐 뿐이다. 하지만 저런 질문 뒤에 깔려 있는 '혐오'적인 시각을 싫어한다. 여성을 혐오하기에는 내 가족의 어머니, 누나들을, 아내를, 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럼 페미니스트도 아니면서 왜 이런 책을 읽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온전한 시각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가 한 쪽으로 생각이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움 때문이다. 한쪽으로 생각이 치우쳐 있다면, 앞서 말했던 내 가족의 여성들에게 너무나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되는 무서움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페미니스트가 되려는 것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은 알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아야 좋든 싫든 감정을 가질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 비슷한 이유로 저자의 전작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페미니스트를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대목이 너무 묵직하게 멋있었다. 최근에 재미나게 읽은, <최소한의 선의>나 <슬기로운 좌파생활> 책들은 모두 그런 비슷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에 비해 묵직함은 덜 한 느낌이다. 이 책은 13편으로 나뉘어져 여자들을 둘러싼 소설, 드라마, 웹툰, 예능 등을 해석(?)하는 포맷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평론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어렵고 낯설었다. 어려운 것은 낯설고, 낯선 것은 이해와 공감을 부족하게 한다. 이해와 공감이 부족한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먼저 13편에 등장하는 소설을 제외한 웹툰, 드라마, 영화, 예능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어려웠을 것이다. 아는 것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책에서 설명하는 부분과 내가 이해하는 부분이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전작에서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책은 문장들이 장황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면, 환타지 로맨스 컨텐츠에 등장하는 글이다. '대중 서사란 대중의 기대 지평이 서사 매체를 통해 산업적 요구와 만나 호흡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련의 서사 유형으로 이야기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특유의 양식화된 약호, 관습 및 스타일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대중 서사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장황하고 어렵다. 한 문장인데 여러번 읽어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의 문해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다가가기 힘들다.
반대로 이 책 전체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이다. '"사주에 내가 물이 많아. 이거나 저거나 다 물장사지 뭐."라며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 단순한 정리에 여성학과 석사 과정에 다니던 당시의 나는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공부한 말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는데, 기훈 언니의 한마디가 그 어떤 글보다도 진실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배울수록 글이 어려워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해도에 대한 문제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똑같이 배운 것을 다르게 설명하는 차이는 설명하는 사람의 이해의 차이에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의 정도가 이해의 깊이와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의 깊이에서 오는 쉬운 설명은 진실을 통하게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슬기로운 좌파생활>에서 우석훈 교수님은 좌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쉽고, 유머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쉬움과 유머가 필요해 보여 다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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