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Novel

<저만치 혼자서>, 김훈

green_rain 2022. 7. 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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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아니다, 거의 매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사람이 좋아질 때가 그렇고, 어떤 작가가 훅 들어올 때가 그렇다. 그런 경우는 작가의 이름에만 의지해서 책을 선택하게 된다. 간혹 선택을 후회할 때도 있지만, 신간이 나오면 생각보다 먼저 선택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좋아하는 작가를 놓아버리기는 만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간 소식을 알림 설정해두면 요즘은 알아서 신간 소식을 알려준다. 이 책도 그렇게 만났다. 꼭 김훈 선생님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도, 제목에 이끌려 한 번을 봤을것 같은 책이다.

 

  <강산무진>을 봤었던가. 아마도 사두곤 아직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에 본 김훈 선생님의 책이 있다면, 사 두었던 책들일 가능성이 크다. 언제부턴가 소설을 읽기가 힘들어졌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책 역시 소설집니다. 왜 갑자기 소설이 읽고 싶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과 함께 천선란 작가의 <노랜드>를 읽기 시작했다. 둘 다 소설이었고, 소설집이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기에는 소설집이 편할 것 같았다. 

 

<명태와 고래>

  강원도 바다에서 살던 어부가 실수로 북방 한계선을 넘어 갔다가 돌아 왔다. 그러나 간첩으로 오인되어 복역 후 자신이 머물던 바다로 돌아온 이야기다.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던 이야기였다. 

 

<손>

  성폭행범을 아들로 둔 엄마의 이야기. 뭔가를 그려내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들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잘못은 없었는지 등의 이야기는 없다. 그저 현재의 자신에게 충실한다.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인정하는 현실은 어설프다. 아들의 죄를 본인이 나눠질 것도 아니다. 복역을 마친 후의 관계는 무섭고 걱정이다. 서사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기대했었을까. 어떤 이야기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아오던 통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설은 아니었다. 어쩌면 더 현실에 부합하는 이야기였기에 읽고 난 후가 찝찝했다. 

 

<저녁 내기 장기>

  이춘갑과 오개남과 오개남의 개 이야기. 현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랄까. 천선란 작가의 <노랜드>가 꼭 맞는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이 책과 함께 읽었기 때문에 굳이 비교를 해 보자면, <노랜드>는 SF라는 장르를 떠나서 더 젊은 세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갑자기 나는 어느 세대도 아닌, 중간에 끼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장 내시경 검사>

  40대 직장인이라면 한번씩은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 보지 않았을까. 매년 회사에서 마련해 주는 건강검진을 하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내 몸에 별 탈이 없기를. 그 생각의 너머에는 내 몸의 고단함이나 아픔이 아닌, 가족들의 무게감이 먼저 였던 것 같다. 가족들을 위해서도 아프면 안된다. 아직은 안된다. 그 생각을 매년, 건강검진과 검진 결과를 앞두고 하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그런 생각들을 갖게 한, 대장 내시경 검사를 앞둔 70대 노인 남자의 이야기다.

 

<영자>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 해마다 9급과 7급 등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숫자가 늘어간다는 기사를 봤었다. 취업 시장이 녹록치 않아졌고, 그나마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별된다. 취업 시장에서 생존하는 것은 대학을 들어가는 문을 들어간 학생들의 다음 과제였다. 다만, 최근 소식에서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그것은 취업 시장의 형편이 나아졌기 때문인지, 인구가 줄어 들었기 때문인지 확실치 않다. 어느 쪽이든 현실은 확실히 녹록치 않다.

 

<48GOP>

  이 이야기는 GOP라는 곳에서 근무하는 주인공(군인)과 한국전쟁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군대를 가지 못한 나는 군대 이야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그래도 GOP가 뭐하는 곳인지는 안다). 아니 아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사실 할 이야기가 없다 뿐이지,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친구를 두었기에 삼군의 모든 군생활을 더 잘 알지도 모르겠다). 학교와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는 성별은 남자가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군대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주제다. 나는 그들과의 그 대화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 왜 안갔는지, 아니면 어떻게 안 갔는지가 그들에게는 제일 중요한 궁금거리였고, 그들이 군대에서 보낸 시간동안 내가 그들과 달리 보낸 시간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저만치 혼자서>

  의지할 곳이 없어 보호가 필요한 수녀님들을 보살피는 수녀원의 이야기이다. 제목은 한 수녀님의 이야기에 닿아 있는 듯 하다. 수도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감히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기독교라는 신앙을 갖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만, 내 삶이 종교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세속적인 삶에서 구복적인 신앙에 가까운 것이기에, 아마도 이런 이야기들은 내용을 떠나, 적어도 내게는, 어떤 울림을 주는 듯하다.

 

  소설을 잘 읽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 이 이야기는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소설 후에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 소설집은 맨 마지막에 <군말>로 각 소설들에 대해서 김훈 선생님이 직접 이야기를 해 주신다. 휴, 다행이다. '군말'의 덕을 안 봤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작 해답은 책 표지에 있었다. 책 표지에 김훈 선생님의 문장이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 그래, 맞다. 그저 이웃의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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