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읽은 SF 소설이다(소설을 최근에 잘 읽지 않았기에 정말로 처음인 건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뭐가 뭔지 머리에 이야기들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고(思考)의 한계라고나 할까. 영상으로 옮겨지는 소설들이 있다. 소설을 먼저 본 경우에는 소설을 읽으며 그렸던 이미지가 영화 속의 영상을 뛰어 넘을 때가 있었다. 반대의 경우에는 소설들의 이미지가 이미 본 영화의 이미지를 넘어서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미 본 이미지가 머리에 각인된 느낌이랄까. 어떤 한 이미지로 한정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SF라는 장르에 대한 이미지와 고정된 개념 같은 것들이 머리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 뭐가 뭔지 모르고 헤맬 때는 말이다. 하지만 장르는 이야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이야기에는 사람이 있었고, 관계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작별'에 대한 이야기다. 10편의 이야기들의 배경이 다르고 이야기들이 조금씩 달랐지만, 마지막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를 제외하면, 왠지 '이별'의 다른 버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는 순간, 그래도 내가 소설을 잘못 읽은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분명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아놓고 보니 소설이 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작가님의 말이 이 소설집을 한 줄로 정리해주는 듯 했다. 다만, '행복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게 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읽고 나면 지치는 책이 될까 봐 두렵다'는 작가님의 걱정은 기우였다고 전해주고 싶다. 지치지 않았다. 작가님의 사인처럼 '외롭고 외롭지 않은 이상한 우리'가 된 듯한 느낌이다.
책의 내용이 아닌 형태에 대해 말을 더하자면, 책이 단단하다. 갈라짐이 없는 튼튼한 책이다.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좋은 책이다. 표지도 마음에 든다. <흰 밤과 푸른 달>에 등장하는 숲이 연상되는 미래적인 그림같다. 앞 서 언급한 미리 그려진 이미지에 부합하는 그림이라고나 할까. 아니다. 표지를 먼저 봤기에, 머리 속에 이런 이미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그런데, 사람과 늑대(혹은 개일지도) 옆의 긴 줄에는 왜 그렇게 이름을 적고 싶었던 걸까.
<흰 밤과 푸른 달>
외계 존재의 침입에 무력한 인간. 인간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을 개조하고 외계 존재를 물리친다. 강력해진 유전자 조작 인간은 원래의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로 남을까 위협하는 존재로 변할까. 두려움은 그들을 외계 생명체의 극복을 위해 우주로 내보내게 된다. 두 여성이 있다. 그들의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다. 미래의 세계에도, SF의 세계에도 관계는 여전히 미숙하고, 헤어짐도 익숙치 않다.
<바키타>
미래 지구의 이야기. 제2의 지구를 찾아 떠난 대원이 지구에 들른다. 목적지는 지구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고향 행성에 돌아와 숲속 지구인들과 문명 지구인을 만난다. 끝끝내 '바키타'가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담담하게 그려진 소설 같았다.
<푸른 점>
책의 제목인 <노랜드>에 어울리는 소설이다. 지구는 우주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한 개의 푸른 점일 것이다. 멸망해버린 지구를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선 우주선. 그 우주선 함장의 이야기이다.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지구와의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구는 이미 4년전에 멸망했다. 더이상 땅이 없는 것이다. 노랜드. 만화 <원피스>의 하늘섬 시즌을 보면 스카이피아의 존재를 알기 전에 자신의 믿음을 믿고 그 땅을 기다려온 이의 이름도 '노랜드' 였었던 것 같다. 왠지 이 이야기를 읽으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옥수수밭과 형>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소설이 <옥수수밭과 형> 때문이었다. 죽은 형이 살아 있다. 그 간절한 바램이 내가 이 책을 구입한 이유였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소년과 그 형의 이야기다. 백혈병에 걸린 형이 죽은 슬픔을 형과의 추억이 서린 옥수수밭에서 달래보려 했는데, 옥수수밭에서 다시 형을 만난다. 중간 중간 감정의 나래이션이 너무 아프게도 마음에 닿았다. 공유된 기억을 가졌다면 똑같은 인물일 것일까. 슬픔과 아픔은 기억과 추억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공유된 기억을 가진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위로와 위안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제, 재>
'해리성 인격 장애가 있는 천재 아이'의 이야기. 하나의 신체에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한다. 재와 제. 재는 천재이지만, 제는 평범하다. 재는 자신의 천재성으로 해리성 인격 장애를 치료하고자 한다. 치료라는 것은 결국 제가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인격체가 사라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치료라는 목적으로 살인이 가능한 것인가. 하나의 육체에서 살려야만 하는 인격체는 누구인가. 그 선택은 올바른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이름 없는 몸>
시작은 여느 소설 같았다. 왜 이렇게 결이 다른 거지, 하는 순간 부터 다르지 않았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긴 소설이었다. 어쩌면 제목에서 이 소설의 결을 짐작해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세계에서도, 특히나 SF 소설에서도 비루하고 비참한 현실은 녹아 있었어야 하는 것인지. 긴 소설이었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SF가 아닌 너무나도 슬픈 현실의 이야기 같아서 아프게 읽은 소설이었다.
<-에게>
제목에는 '이름'이 들어가야 할 곳이 비어있다. 앞의 이야기와 연결이 되는 것일까, 하는 마음으로 이어 읽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한 소설이었던 것일까. 짧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나는 잊지 말아야 할 누군가의 이름을 이미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주를 날아가는 새>
역시 '이별'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설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지구의 종말을 앞두고 지구를 떠나는 사람들. 그 안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떻게 이어지나 했는데, 다행히 안심이 되는 결말이다. 슬프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이 아니어서 따듯했다.
<두 세계>
쌍둥이다. 일반인들은 쌍둥이에게 뭔가 특별함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으레 하는 듯 하다. 다름은 없다. 또한 많은 부분들에서 같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음도 없다. 이 이야기는 그 다름을 인공지능으로 풀어내고 있다. 정말 한편의 영화처럼, 이 소설집에서 가장 SF적이게 읽은 소설인듯 하다. 물론 너무 내가 영화적으로만 SF를 고려하는 SF 초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지구에 살았던 외계 생명체와의 전투가 끝이 났다. 나는 함께 싸웠던 벤의 죽음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 남았다가 사고를 당한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 이후 나는 구조된다.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이 등장한다. SF적인 요소들은 그저 소재일 뿐이다. 꼭 SF가 아니어도, 이 이야기는 현실과 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삶과 죽음, 관계와 외로움 등 소설의 배경을 SF가 아닌 현실로 고대로 옮긴다 해도, 이 이야기의 현실성은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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