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봤을까. 기억 남을 정도의 특이한 이름도 아니다. 시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끝날 때까지 그 기억은 살아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봤었다고 하자', 이런 마음으로 시집을 읽었다. 그렇다. 이 시집도 낯설지 않은 시인의 이름이 이유이기도 했지만, 전혀 낯선 이름이었다고 해도, 나는 이 시집을 제목만으로도 선택했을 것이다.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 원론 수업을 들을 때만큼의 재미는 아니지만, 여전히 내게 경제학은 재미있다. 지금은 어려운 것이 더 커지긴 했지만, 꼭 학문적인 것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깊게 들어가면 어려운 법이다. 그 경제학이 재밌는 이유 중의 하나가 '가정' 때문이다. 원론 시간에 교수님께서 해 주신 이야기 중에 무인도에서 경제학자, 공학자, 또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슨 전문가 이렇게 세명이 남겨졌다. 병뚜껑으로 닫혀 있는 병음료를 발견했다. 각자가 내용물의 손상없이 병뚜껑을 따기 위한 의견을 제시했다. 공학자는 힘의 원리를 이용함은 물론 최적을 각도를 계산해 의견을 제시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와중에 경제학자가 낸 의견은 "여기 병따개가 있다고 치자" 였다. 경제학에서 가정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뼈아픈 농담인데, 그때는 저 웃기지도 않은 것이 왜 농담으로 자리했는지도 몰랐더랬다. 여전히 웃기지 않은 농담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그 의미는 알 정도가 된 듯하다.
길게 돌아왔는데, 가정 형태의 제목으로 된 이 시집의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치지'니. 무엇일까. 대체 무엇을 마음으로 가정할 수 있으며, 마음을 가정해야만 이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는 또 무엇일지 너무 궁금했다.
시집의 모든 것들을 내 마음으로 가정하기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올 해에는 제법 시집들을 읽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법 마음에 드는 시집들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시집은 원래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다만, '잃어버린 정신을 찾아서'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두 시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이 두 잃어버린 시리즈(비슷한 제목만 가지고 시리즈라고 명명했다)는 시문들이 뭔가 공감이 되었다고나 할까. 다른 시들과 비교해 뭔가 끌리면서 다시 읽게 만들었다.
시는 여전히 어렵다. 무언가 공감이 되는 듯 하면서도 이내 다른 쪽으로 흘러가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이미 방향이 틀어진 느낌의 흐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마치 이제는 내 감정이 아닌게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걸 내 문장이라고 하자,는 느낌이 드는, 온전히 내 안에 흐를만한 시를 어서 만나길 바랄뿐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계속 읽어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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