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Essay

<마흔에 관하여>, 정여울

green_rain 2018. 12. 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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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서평단을 모집하는 출판사의 블로그 글을 보았다. 나는 올해로 우리나라 나이의 '마흔'이 되었다. 20대에도 즐겨 듣고 부르던 노래가 김광석님의 노래였고, <서른 즈음에>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서른이 될 때도 큰 느낌은 없었다. '마흔'도 그럴줄 알았는데, 서른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조금은 여유로워질 것 같았던 나이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바쁘게 살아가는 나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뭐, 아직은 40대 입구에서의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2018년, 나의 마흔이다. 다른 사람들의 '마흔'이 궁금했다. 그래서 리뷰 서평단 모집에 지원했는데, 운이 좋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출판사에서 좋아할만한 리뷰는 아닐 것 같다. 서평단에 뽑아준 출판사에 미안하다.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책은 아니었다. 정여울님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걸 보면, 유명한 작가이긴 할 것이다. 다른 작품들을 접해보지 않았기에, 지금의 이야기는 이 책에 관해서만 한정한다. 처음 접한 정여울님의 산문은 내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산문은 공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분들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게 이 책에서 실망한 부분들일 것이다.

  작가님보다는 제목에서 시작된 선택이고 독서였다. 나에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보다는 이미 벌여 놓은 일들에 치이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은 30대 때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그 안에서 해야 할 일들에 치이며 초조한 시기. 그게 나의 40대일까? 다른 사람들의 마흔 이야기를 기대하며, 걱정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면, 작가님의 '마흔' 이야기라도 기대를 했었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들은 많지 않았다. 

  제목과 부합하는 내용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가까운 챕터 일부, 그리고 에필로그 정도인것 같다. 목차에 나와 있는 5개의 시간 영역으로 '마흔'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각각의 시간에 대한 내용들이 제각각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다. 먼저, 공자가 말한 '불혹'이라는 단어는 필히 등장할 것이라 예상을 했었다. 그리고 등장했다.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불혹과 일맥상통한다면, 나는 이런 '미혹되지 않음'이 참으로 좋다'라는 구절이다. 전후 맥락이 빠져 있으니, 이 구절만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불혹'이라는 단어에, 공자라는 성현의 말씀에,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미혹되지 않은 불혹의 나이라서, 이전보다 관련 문헌을 덜 찾고, 그것에서 해방되는 듯한 표현은 작가로서 의무를 소홀히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의무를 저버리거나 혹은 태만히 하면서 '불혹'이라는 단어 뒤로 숨어버리는 것은 독자들에게 당당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학회에 참석하여 발표 후 코멘트를 들은 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의 말씀을 들으니, 다들 좋은 말씀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저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을수록 오히려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입장이 저의 진짜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의견들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저는 여기서 한 글자도 고치지 않겠습니다". 학회에서 발표하면 가끔 코멘트를 위한 코멘트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느끼는 거절의 해방감이 40대에게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공감은 가지 않는다. 정말 도움이 되는, 내 글에, 내 생각에 도움이 되는 코멘트는 없었을까? 고집을 넘어서면 아집이다. 아집이 생기는 40대라면, 나는 그런 40대를 원치 않는다.

  챕터마다 일관된 내용이 아니여서 공감이 떨어지는 부분들도 있다. '나는 조직 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늘여 쓰는 것은 '창조'지만 짧게 줄이는 것은 '편집'이다', '내가 요약을 잘하지 못했던 것은 정말 짧게 줄이는 요령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줄이는 게 소중한 문장들 하나하나의 세밀한 뉘앙스를 죽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챕터들이 있다. 그 내용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자기애가 강한 분인것 같다는 생각이다. 

  자신은 이런 사람(예를 들면 '정'이 많은)인데, 사회가, 조직이 나를 실망시킨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조직 생활에는 맞지 않은 사람이니까. 조직 생활은 못하지만, 공동체적 삶은 꿈꾼다. 조직 생활과 공동체적 삶이 무엇이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조직 생활을 공동체적 삶으로 포장할 줄 안다면, 홍보에도 재능이 있으실 것 같다. 그런데 본인은 강의를 하면서 홍보를 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채용 계약서에 없는 일을 강요받는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료들 어느 누구도 그런 업무의 내용이 적힌 계약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의 동료에게 돌아갔을 일이다. 공동체적 삶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 대신 하는 삶은 아닐 것이며, 하고 싶은 않는 일들만 하는 것이 조직 생활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왜 짧게 쓰는 것은 '창조'가 될 수 없는가? 짧게 쓰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창조'이고 작가의 능력이 아닌가? 작가가 일반인과 다른 글쓰기를 하는 것이 그런 차이 아닌가?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장점으로 부각시키는 느낌이다. 또, 한 내용에서는 너무 많은 모험들을 내려두라 했다. 얼마 뒤의 내용에서는 도전을 하라고 한다. 모험과 도전이 다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른 단어지만, 같은 의미로 읽히는데 말이다. 작가분의 말대로 감정이 넘치는 분인건 충분히 알겠다. 그런 감정을 조절하여 글을 쓰는 능력 또한 작가와 일반인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40대의 감정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인가? 감정 과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40대는 넘치는 감정이 조절되는 나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자신의 느낌들을 사실화 시키는 부분들도 등장한다. 작가들의 모임에 참석한 후배의 모습은 본인의 느낌과 생각일 뿐이다. 자신의 느낌이 맞다고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설사 내 느낌이 맞았다고 해도, 내용 중에 내 안의 소리에 당당하라고 하는 부분들도 있지 않았던가. 상황을 가려가며 내 안의 소리에 당당하라는 건가, 그러면 앞서 적은 학회에서의 행동도 상황을 고려한 당당한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챕터마다의 이야기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일관성이 없는 좋은 말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전혀 공감을 못하는 부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엔 내 힘으로는 절대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구절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누군가를 하염없이 걱정하는 내 마음보다는, 이런 내 걱정에 반응조차 하기 힘든 상대방의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안다'는 구절도 크게 공감한다. 그런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을 경험했기에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더 잘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슬픔을 나 혼자만의 아픔으로 간직하며, 타인과 슬픔의 크기를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하염없이 걱정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슬픔에서도 이기적이다.

  '40대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커다란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고, 비로소 '그동안 잘못 살아온 시간들'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도입부에 적었던 나의 느낌이다. 40대의 문 앞에 선 내가 처음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고 말이다. 후회없이 살자는 나의 인생 모토에는, 그동안 후회없이 살아왔다는 나의 자부심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며 살았을 거라는 후회없음이 들어 있다. 그런 자부심이 40이라는 나이의 문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내게도 드리워지는 느낌이다.

  또 좋았던 부분들 중 하나는 읽었던 책들의 이야기를 챕터의 내용과 연결지어 풀어가는 형식이다. 그 부분들이 제일 공감이 많이 가고 읽기에 편했던 부분들이었던 것 같다. 책 전체가 이런 형식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개인적 경험보다는 읽었던 책이나 보았던 영화들처럼 공유하고 비교할 수 있는 경험들을 '마흔'과 연결했다면 더 많은 공감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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