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클러버 활동은 총 10개의 미션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 중 벌써 7번째 미션이다. 이번 7번째 미션은 "'논단'과 '현장' 코너에 수록된 글 중 가장 흥미로웠던 글을 골라 새롭게 알게된 점이나 글을 읽으며 느꼈던 점을 자유롭게 쓰기"이다. '논단'에는 <조국사태, 대학입시 그리고 교육불평등>,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 <4·24교육투쟁과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이, '현장'에는 <미국 민주당 경선 현장>과 <함께 풀어야 할 후꾸시마 오염수 문제>가 실려 있었다.
경제학을 공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존 란체스터의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최근 이슈인 김종엽님의 <조국사태, 대학입시 그리고 교육불평등>, 안병진님의 <미국 민주당 경선 현장>, 이헌석님의 <함께 풀어야 할 후꾸시마 오염수 문제>도 재미있게 읽었다.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목만 보고서도 이 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물론 글을 읽고 나서도 생각은 변함없이 유지되었고 말이다. 과거와 달리 복지 예산이 들어나면서 사회복지서비스업의 생산이 서비스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었다. 포퓰리점 성격의 공약이 이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재정적자 폭도 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에 선뜻 찬성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완벽한 정책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 제도 역시 단점과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성격의 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라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최소한은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 최소한도 준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은 희망이 될 것이다. 김종엽님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조국사태'에 대한 시각도 각자의 위치에 따라 보는 시각과 의견이 다르다. 현 정부는 정책에 있어서 많은 변화들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라는 것이 결과의 평등함만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여서 씁쓸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과정의 평등함을 보장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평등할 것이다. 나는 과정의 평등함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이 '보편적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다리를 걷어차며 결과만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일은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더 가지면 누군가는 덜 가져야 한다. 하지만 내가 더 갖고, 혹은 누군가가 더 갖는 것이 꼭 사회적 효용을 증가시킨다고는 볼 수 없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한 개인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효용이 증가할때 사회적 후생이 더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제로섬 게임에서 파레토 효율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만 가능하다. 개인의 효용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의 후생 증가가 결국은 개인에게도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사회 전체의 후생을 늘리는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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