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창작과 비평(2019, 겨울호)>, 창비 - 8. 레포트

by green_rain 2020. 2. 1.
728x90
반응형

 

  레포트라니. 미션보다는 정말 과제에 가까워 졌다. 분량까지 정해져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보고서는 평가와 이어진다. 무거운 무게감과 함께 부담도 느껴진다. 그래서 그냥 느낌을 적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적어 내려 가야 겠다. 앞선 글들에서도 썼었지만, 클러버 활동이 아니었다면, 내가 문예 계간지를 읽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런 시간을 따로 할애하거나, 계간지에 눈길이라도 주었을까. 출판사로서 창비와 문지, 문학동네, 민음사 등은 내가 신뢰를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출판사 들이다. 그럼에도 단행본 외에 그들의 문학 잡지를 지금까지 읽어 본 적이 없었단 사실은 어쩌면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지금부터 내가 처음 계간지를 읽으며 느꼈던 느낌들을 적어본다.

 

  첫째, 종합 잡지 같은 느낌이다. 시나 소설 혹은 문학작품들과 그 작품들에 대한 평론들만 수록되어 있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물론 예상한 장르의 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상당히 폭 넓은 범위의 글들이 실려 있었다. 특히 최근 사회적 이슈들과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글들을 보며, 나의 생각들과 비교도 해보고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다. 봄 혹은 여름호에는 '우한 폐렴'과 관련된 글들도 실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보기도 했다. 혹은 나의 작은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겨우 한 번 읽었으면서 말이다. 

 

  둘째, 창비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창비 계간지니까 자기 출판사 저작물을 홍보하기 좋은 곳일 것이다. 창비에서 한 해에 몇 편의 책이 출판될까. 계열사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출판사들까지 합치면 계간지에서 홍보할 책은 계간지의 지면을 다 통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은희경 선생님의 인터뷰가 실렸다. 은희경 선생님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관심이 같다.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일까. <빛의 과거>와 관련해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그 부분을 보기 전에 미리 <빛의 과거>를 읽었다. 그런데 <빛의 과거>가 창비에서 출판되었던가. 아니다. 그런데 중간에 <빛의 과거> 광고도 실려 있다. 내가 본 이 책의 다른 모든 광고들은 창비에서 출판되거나 혹은 출판될 서적들의 광고였는데 말이다. 물론 문학과지성사에서 광고료를 지불했었을 수도 있다. 문예지가 일종의 잡지 형식임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이상할 것 같지 않은데, 어쨌든 경쟁사를 홍보해 주는 것임을 고려하면 내 기준에서 선뜻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편협한 나의 기준을 통렬하게 와장창 깨부수는 일화 같았달까. 문학의 넓이를 함부로 재단했던 나의 무식함이었을 것이다. 이번 클러버 활동으로 깨달은 점이다.

 

  셋째, 시의 발견이다. 시는 나에겐 항상 애증의 관계였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이 참 좋았었다. 김영랑님이나 김춘수님의 시들을 특히 좋아했는데, <꽃>은 정말 여러번 필사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름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생각하면서 시라고 끄적여 본 적도 있었던것 같고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엔 원태연님과 류시화님의 시가 많이 유행했었던것 같다. 20대엔 황지우님의 시집 중 '주점'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구입해 읽었었고,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도 여러권 구매해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외에 몇몇 기억들이 있지만, 소설이나 다른 분야에 비해 기억의 수는 극히 미미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독서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본격적인 독서도 20대에 들어서면서 시작했고, 그 독서들 속에서 시는 너무나도 간헐적이었으니까 말이다. 왜 시를 다른 장르에 비해 적에 읽었는지, 그 이유가 한 두가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였던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졌던 것인지, 시는 나에게 어렵지만, 읽어보고 싶은, 그렇지만 읽어지지 않는, 그렇게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소설이나 인문 서적 등에서 나타나는 서사가 없는 것이 이질감이나 어려움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그래서 어렵다는 느낌이 자리하게 되고 말이다. 읽어도 뭘 읽었는지 모르는 그런 사태 말이다. 물론 그런 책들이 소설이나 다른 장르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확률은 시가 월등히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이번 계간지의 '시'편과 특집편(<공동세계를 향한 시의 모험>), 대화편(<젊은 시의 정치성>)를 만났다. 여전히 어려운 시들도 있었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들에 대한 나의 감정 중 '애(愛)'를 끄집어 내는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느낌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을 적어 본다. 즉, 미션 순서에 대한 것이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책을 앞에서부터 뒤까지 주욱 본다. 제목과 저자, 출판사 등이 책을 선정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소설을 제외하고는 목차 역시 구입 전에 꼭 보는 편이다. 그리고 구입해서 소설처럼 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필요한 부분이나 재밌을 부분부터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순서를 섞어 책을 다 봐도 뭔가 다 읽은 기분도 들지 않는다. 이상한 습관이다. 이 책도 잡지 형식이어서 꼭 처음부터 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미션순서를 보고 놀랐다. 책의 중간부터 봐야 했다. 즉, 시, 소설, 작가조명, 특집, 문학초점, 논단 및 현장 순이었다. 이런, 역시 나의 편협함은 촌스러웠다. 미션을 수행하면서 순서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밝혔듯 클러버 활동이 아니었다면 내가 계간지를 선택해 읽었을지 모르겠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창비에서 나온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나처럼 창비의 계간지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미션 순서는 클러버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계간지의 재미를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큰 반감없이 좋아하는 문학작품, 그 중에서도 짧은 시로 시작해서, 소설로 재미를 업(up)시켰다. 그다음 유명 인기 소설가 인터뷰를 배치시켜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고, 뭔가 특별함이 있을 것 같은 특집을 이어 나갔다.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 깊이를 더했으며, 최근 사회 이슈들로 생각할 것들을 던지며 미션을 마무리 했다. 엄밀하게 미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계간지를 거의 다 읽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미션 순서의 배려일 것이다. 잡지는 보통 사서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데, 순서와 상관없이 많은 부분들은 봤다고 해서 전체를 다 봤는 느낌이 안 드는 것과는 상반된 느낌이니 말이다.

 

  미션 기간 내에 미션을 수행하지 못했던 적도, 미션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빡빡하게 읽었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기간이 없는 독서였다면 내가 다 읽었을까, 아니면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을까. 답정후. 답은 후자로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클러버 활동은 재미났고, 나의 독서에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될 중요한 활동이기도 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