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왠지 어려워 보인다. 미술도 많이 친근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대중적인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접근성의 문제인것 같다. 술자리에서 그렇게나 철학적인 사람들일지라도 철학에 잘 접근하긴 쉽지 않다. 술이 깨고나면 아마도 접근은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철학에 빠져 지낼 시간조차 없는, 철학이 배제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철학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접근에의 시도조차 원천봉쇄 해 버리는 탓일게다. 내 경우가 그렇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음악의 경우 노래를 잘 하고 못 하고와는 상관없이 노래방에 가서 쉽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음악을 틀어 놓고 일을 할 수도 있다. 미술은 다르다. 아무래도 접근성 측면에서 음악보다 쉽지 않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다. 잘 못 하는 노래는 가끔 할 수 있지만, 잘 못 그리는 그림을 구태여 가끔 그리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철학과 미술이 만났다. 스티븐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가 생각났다. '좋아하며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올 해(2021년) 읽은 책들 중에서 손에 꼽히도록 재밌게 읽은 책이다. 아이디어가 좋았고, 책의 구성도 좋았다. 무엇보다 내용이 재밌다. 어려운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저자가 쉽게 풀어준다. 글에서 간간히 뿜어져 나오는 유머스러움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정치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13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대부분 전공자이면 전공영역이 있을 법한데, 서양과 동양 철학 등 다양한 철학적 담론들을 들려준다. 4장 5장의 이야기는 특히 지금 읽고 있는 <좁은 회랑>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홉스, 로크, 루소의 철학을 비교해 주는 부분이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좋았다. 설명되는 예들을 보면서, '아, 이렇게도 설명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고등학교 윤리 시간이 졸리지만은 않았을 것' 같았다. 또 이야기의 시작인 1장엔 '천지창조' 그림이 등장한다. 손가락이 닿을듯 말듯한 부분을 캡쳐한 부분에서 나온 퀴즈는 나 역시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직접 읽어 보며 풀어 보시길). 오래되었지만, 바티칸 성당에서 직접 보기도 했었던 그림이었는데... 어떤 편견같은 것이 사고에 서려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들은 이렇게 어떤 그림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이야기들로 진행된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철학자들의 사상들이다. 니체, 공자, 베버, 로크, 루소 등의 철학자들은 물론, '다원주의'나 '정의'와 같은 이론이나 관념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4장과 5장, 8장과 9장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하나의 흐름은 읽혀지지 않는다. 그 점이 다소 정리가 덜된 개개의 이야기들을 모아둔 느낌을 줄 때가 있었다. 기고되던 글들을 모아둔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면, 그동안 읽어 본 미술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은 시대의 흐름을 기반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리즈인 양정무 교수님의 책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다고 흐름의 무일관성이 독서에 크게 마이너스도 아니었다. 어떤 큰 주제에 하나의 흐름이 느껴지는 책을 좋아하는 나의 습관의 문제일 뿐이다.
마지막 11, 12, 13장은 앞 선 챕터들과 느낌이 좀 달랐다. 진행 방식이나 전체적인 흐름에서 좀 벗어난 느낌을 준다. 그게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내게는 좋았던 부분이다. 11장은 챕터들 중 가장 긴 부분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태어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12장은 미술과 철학보다는 미술작품을 보면서 사회 현상에 대한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들려주었다. 전적으로 공감하며 읽었다. 마지막 13장은 아이들에 대한 느낌이 많이 전해져 오는 챕터였다.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많이 부끄러웠고, 아이들에 대해서, 보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는 챕터 였다. 미술과 철학을 떠나서 개인적인 부분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갖게 했다는 점에서 앞선 챕터들과 다르게 다가왔었다.
책이 늘어나면서 한정된 책장의 공간은 부족해진다. 가끔 너무 어지러운 책장을 보면서 책들을 정리할 때가 있다. 독서 후에는 책장을 정리할 때, '여전히 내 책장에 남아 있을 책인가'로 책장에 꽂을 책을 결정한다. 이 책은 다분히 책장에 꽂아둘 것이다. 후에 아이들이 자라서 이 책을 꼭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 글은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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