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사인회에서의 모습이다. 요즘은 저자 사인이 속 표지에 인쇄되어 나오지만, 예전에는 대형 서점에서 이벤트의 하나로 저자의 사인회가 열리곤 했다. 그곳에서 처음 뵈었다. 수녀님의 글이나 시를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집을 읽고 좋았기에 사인회도 다녀온 것 같은데,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사인회에서 만난 수녀님의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이름을 물어보고, 이름을 넣어 준비해 온 문구를 적고 저자의 사인을 하는데, 수녀님은 본인의 좋은 글귀 중 하나를 적어 주시곤, 너무도 다채롭게 준비하신 꽃 모양의 스티커를 이것 저것 찾아서 꼭 맞게 붙여 주셨다.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올 초에 읽었던 박완서 선생님의 책 속에서 수녀님과의 인연을 접했다. 그때 다시 아, 수녀님 책을 다시 읽어 볼까, 했었는데... 이렇게 딱 새 책이 나왔다. 시가 주를 이루는 책이긴 한데, 시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거의 1년치 일기 같은 메모도 있었다. 수녀님의 소소한 일상을 접할 수 있었고, 아픈 몸으로 더 힘든 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모습에서 나의 생활과 모습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짜증과 화가 많아지는 모습을 곳곳에서 느낀다. 운전을 하면서 급해지는 성격과 나쁜 생각들이 머리 속에 들 때면 흠칫 놀라곤 한다. 회사에서 별거 아닌 일에 이상스레 화가 치밀고, 아이들의 으레 그러려니 하는 모습들에 언성을 높이곤 한다. 나란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싶은 마음에 변화를 다짐하며 잠에 들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변화보다는 쉬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조금은 마음이 따듯해졌다. 적어도 읽는 순간만큼은 더 반성하는 모습으로, 내 삶에 위로 받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실제로 그랬다. 조금은 평안해졌고, 여유로워 졌으며, 차분해졌다. 어떤 문구가 그런것도 아니고, 어떤 문장이 그런것도 아니다. 그냥 이 책이 그랬다. 모든 페이지가 그랬다. 신기하고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아마도 사인회에서의 그 모습. 그냥 독자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을 다해 본인을 전달하고자 하는 그 모습. 그 모습이 책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진심은 위로와 위안을 준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감사했다. 오래도록 건강하세요,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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