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작가님의 소설들은 언제나 제목에 끌린다. 뭔가 멋지다는 생각이다. 멋진 제목만큼이나 늘 소설은 재미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분이다. 이 소설집 역시 멋지고 재미나다. 첫 소설과 마지막 소설을 읽고 나면, 어렴풋하게 나마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자전적인 소설일까. 소설가인 주인공이 아내와 만나게 된 일과 장모님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 책을 구입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인 멋진 제목만큼이나 재밌는 소설이다. 약간 염세적이지만 끝은 희망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 희망은 평범하며,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진다. 실제로 존재하는 소설이라면, <재와 먼지>도 찾아 읽어 보고 싶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강연 요청으로 추자도에 들어간 주인공은 대학시절 친구를 그곳에서 만난다. 그러면서 옛 친구와의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무언가 좌절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이다.
<진주의 결말>
진실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확신은 믿음에서 오는 것일텐데, 믿음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지 않을까?
치매의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오던 유진주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살인 조사를 받게되는 용의자가 된다. 이야기는 이 사건을 담당하는 범죄 심리 전문가와 유진주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결론은 나지만, 결말은 없다. 확신에 대한 잘못이나 보상도 없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달 글귀가 좋았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오는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삶은 기간이 다를 뿐이지 모두가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 그 끝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누가 보더라도 짧게 느껴지는 생(生)이 있다. 그 짧은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죽음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은,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일 것이다. 그 경험이 우리를 비관주의의 삶에서 낙관주의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나아질 것 없는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낙관적으로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은 그 낙관주의이고, 그 이야기가 삶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엄마 없는 아이들>
제목은 소설 읽기를 시작하는 것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상실에 대한 이야기일까. 여전히 아직까지도 나는 상실이 주는 아픔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누군들 편하겠는가. 그냥 못 본척 마주하지 않는 방법을 쓰고 있을 뿐이다. 다만 소설의 주인공은 자의는 아니지만, 성공적으로 상실이 주는 아픔과 마주하고 대면하는 데 성공한다.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애써 모르는 체하는 내 모습과는 다른 모습에 안도했고, 응원했고, 부러웠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눈을 뗄 수 없었다. 공포 영화를 보듯 몸이 떨려왔지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TV를 몇 날이고 쳐다봤다. 대상을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그 해 4월을 보냈었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기억은 상당하다. 특히나 슬픔이 동반된 죽음의 기억은 그 파급력이나 지속성에서 상당했다. 기억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망각이라는 단어로 잊혀지지도 않는다. 세월의 흐름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회상되지 않도록 희미해지는 정도다.
만약 은주가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나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 속에서라도 기억하기에 애써볼 것이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르에게>
왜 미래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가. 어쩌면 주제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닿아 있는 듯 하다. 천주교가 등장하지만, 특정 종교보다는 근원적인 믿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육신의 삶과 정신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육신의 삶으로 신을 찾기에 우리는 늘 방황하며 결과에 좌절한다. 하지만 정신의 삶 속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어리석을 뿐이다. 생각이 그치면 존재는 당연히 느낄 수 있다. 그 기저에 함께 존재하는 사랑까지도 말이다. 삶에 더 감사하며, 타인에게 더욱 다정해야 한다. 어둠과 빛 중에서 선택은 항상 '빛'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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