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Essay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green_rain 2023. 11. 1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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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고 어찌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해야만 하는 일들이 쌓여 있어서 독서를 좀 자제하고 있는데, 어찌 손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작가님을 정말 몰랐다. 여기 저기서 본 이름만 기억에 남아 낯설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표지에서 작가님의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보고는, 아, 이 소설을 쓴 작가님 이셨군요, 했다. 이 책을 구매하지 전에 이 소설을 구매해 두었더랬다. 같은 작가님 이셨군요. 요즘 좀 소설을 잘 읽지 않긴 했다.

 

  작가님은 술꾼이다. ~꾼으로 끝나는 사람들은 직업은 아니지만, 무언가에 전문성을 띄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술꾼이 그렇고, 소리꾼이 그렇다. 노름꾼과 사기꾼도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전문성을 띄긴 하니까. 나 역시 술을 좋아하긴 하는데, '꾼'까지는 가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과음을 하면, 숙취의 강도가 세게, 그리고 길게 이어진다. 과음이 심해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어느 순간부터는 기억도 사라져 있다. 무서웠다. 나이가 들고 적은 양의 음주에도 블랙아웃을 겪거나 숙취로 고생을 하기 시작하면서,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꾼'의 자질을 포기했다고나 할까.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자연스레 술자리가 많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래저래 '꾼'이 될 수 없는 신체 및 체력과 환경이었다. 

 

  요즘은 유튜브에서도 그렇고, 술을 마시는 방송들이 많아진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술꾼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 책에서의 작가님도 마찬가지다. 부럽고, 부럽고, 부러웠다. 젊은 시절 나와 친구들도 돈이 없었다. 술은 마시고 싶은데, 금전적인 여유가 늘 부족했다. 한번은 세 명이 돈을 모았다. 만이천원이 모였다. 소금구이 집에 들어가 육천원짜리 1인분 고기 한 덩이를 시켰다. 손바닥만한 목살을 가위로 손톱 크기로 잘라 불판을 덮었다. 사장님이 보시곤 감탄을 하며, 안쓰러웠는지 한 덩이를 더 주셨다. 그 당시 2천원이던 소주를 3병 시켜 1병씩 마셨다.

 

  또 한 번은 대낮에 친구가 전화로 나를 불러 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굳이 여자친구도 없던 내게 말하며, 온갖 슬픔속으로 빠져 들었다. 우리에게는 2천원이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천원이던 막걸리를 하나씩 샀다. 갖은 슬픔을 억지로라도 만들며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던 친구 녀석은 술에 빨리 취하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한다. 갖고 있는 막걸리를 코를 막고 쭈욱 들이켠다. 그리곤 달린다. 조깅하듯 달리는 것이 아니다. 전력질주다. 우리가 만난 곳은 고려대학교(그당시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운동장이었다)였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뛰고 나니 아래쪽부터 머리 끝까지 술이 한달음에 올라왔다. 그렇게 막걸리 한 병씩 먹고 2~3번을 전력질주한 우리는 운동장 스탠드에 잠들었다. 3~4시간 자고 일어나, 저녁에 수업을 마친 친구 2명을 만나 이별의 슬픔을 맞은 친구의 슬픔속으로 함께 침잠했다.

 

  그랬다. 지금보다는 몸이 술을 더 감당하던 젊은 시절에는 '꾼'이 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셨다. 술과 관련한 많은 기억들이 있었고, 술을 같이 마셨던 친구들에 대한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 기분좋게 취했던 그 감정들이 좋았고, 즐거웠던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 작가님의 마지막 표현처럼, 나는 사람을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며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순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술이 생각나는 순간들은, 과거에 즐겁고 행복하게만 마시던 그 순간들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다. 사람이 좋았던 나는, 이제 사람들 없이 혼자서 마시는 술에 더 익숙해졌다. 

 

  혼자서 마시는 상황들에 익숙해지다 보면 마셔야만 하는 상황들을 계속 찾거나 만들게 된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대표팀 경기가 있다거나, 얼마전에는 응원하는 팀도 아니었는데 한국시리즈 핑계를 댔다.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내는 또 술이냐며 한마디 하겠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진듯 하다. 삼겹살을 먹는데 술과 함께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이유를 묻는 아내가 된 것을 보면 말이다.

 

  술 이야기만 길어졌다. 책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책은 작가님의 술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에는 글도 재밌고 술 이야기도 좋은데, 웃음에 대한 감각이 조금은 올드하게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개인적으로 술에 대해 정말 재밌게 읽었던, 김혼비님의 <아무튼, 술>이 너무 강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나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 책의 모든 부분들이 나의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양주는 입에 맞지 않고, 많은 술들을 다양하게 먹어 본 것이 아니라서, 최근에서야 입에 가장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증류주를 찾은 나이지만, 블루를 증류주로만 바꾼다면, 이 책은 거의 나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술자리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너무나도 입가를 미소를 띄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술꾼'인 작가님을 부러워하면서, 술자리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하면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작가님의 에피소드들의 재미를 느끼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폭풍 공감과 함께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다시 봐도 제목이 너무 너무 좋았는데, 뭔가 하나가 걸린다. 작가님! 밤에만 드시는 게 아니시잖아요.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은 <마시지 않을 없는 날이니까요>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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