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좋아한다.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서울이 고향은 아니다.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내 고향은 서울이 될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다. 이사하면서 처음 서울을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곳이라 생각하면서 만난 서울은 느낌이 달랐다. 서울은 어린 내가 봐도 그 전까지 살았던 대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컸다. 크기를 짐작할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도시스럽다는 느낌이랄까. 동네 골목 골목마다 도시스러웠다. 30년 가까이 서울에서만 지냈다. 그 사이 내가 자란 곳도 많이 변했다. 서울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서울을 방문하곤 한다. 갈 때마다 새롭게 변화하는 듯 하다. 서울은 늘 새롭고 좋다.
서울에서 특히 좋아했던 곳은 우리 동네였다. 내 마음 속의 동네가 좀 크긴 한데,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도 좋지만, 사람들이 북적대도 익숙한 우리 동네를 좋아한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있었던 종로도 좋았고, 지금은 좀 느낌이 다르지만 늘 젊은 느낌의 대학로도 좋았다. 구경거리가 많았던 동대문과 동묘도 좋았고, 동대문에서 혜화동으로 넘어오는 그 길도 좋았다. 혜화동 뒤 편의 성북동과 평창동, 삼청동, 북악스카이웨이도 자주 갔으며, 혜화동에서 이어지는 삼선동과 미아리도 좋았다.
동대문에서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이대병원과 동대문교회가 있었다. 그 길에 아마도 이 책에서 말하는 도성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성곽길로 알고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성곽길 조성사업을 하면서 산책하기가 좋아졌다. 성곽길을 모두 걸어보고자 했었는데, 한번도 해보지는 못했다. 동대문에서 혜화문으로 이어지는 길과 창의문쪽에서 혜화문까지의 구간을 두어번 걸어본 것이 다 일 것이다. 그저 산책이 좋아 혼자, 혹은 친구들과 걸었던 것 같다. 도성에 대한 의미나 역사적 탐구와는 관련이 없는 그저 성곽길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좋았던 기억이 이 책으로 이어진 것 같다. 출간되고 바로 구입한 것 같은데, 이번 연휴에 책꽂이를 보다가 발견했다. 도성을 추억하며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역사적 내용들이 많다. 역사서는 옛날 이야기를 듣듯 읽기 때문에 항상 재밌는 편이다. 이 책도 다양한 사진들과 함께 있어서 읽기 지루하지 않다. 특히 내가 다녀본 구간이 등장할 때면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났다.
도시는 변한다. 특히 서울이 그런것 같다. 명절이면 본가인 서울에 간다. 1년에 한 두번 방문하지만 우리 동네도 꽤 변화가 있는 듯 느껴진다. 해외를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생때 배낭여행을 갔던 스페인과 결혼 후 아내와 함께 간 스페인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대학생때 갔었던 프라하와 출장으로 간 프라하도 비슷했다. 그런데 서울은 안 그런것 같다. 늘 새로운 느낌이다. 아쉬움에 하는 말은 아니다.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지만, 변해서 늘 새로운 느낌도 좋다. 내게 서울은 늘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비정형의 도시인 셈이다.
도성은 다르다. 하나 하나 많은 것들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걸었던 성곽길을 지금 다시 걷는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좋다. 늘 새로운 서울에서 늘 한결같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뭔가 안도감을 갖게 한다. 서울이 그래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책은 앞서 말한 대로 사진과 함께 기술되는 내용들을 확인하며 읽을 수 있다. 또한 도성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면 추억을 되새기며 읽을 수 있고, 그 추억에 역사적 이야기들을 얹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역사적 이야기에 사실 여부를 꼭 달고 싶지는 않다. 이 책 역시 뭔가 사실들을 밝히고 싶어하는 부분들이 있어 보인다. 그 부분들에 사실 확인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여지는 저자의 느낌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와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조금 있는 것 같았다. 그 부분들을 제외하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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