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겨울호 클러버의 3주차 과제는 소설이다. 이번 겨울호에는 이기호(장편 연재 소설)와 이승은, 장류진, 전성태,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들이 실려 있다. 3번째 연재 소설인 이기호 작가님의 소설을 제외하고 읽어 보았다. 그동안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런지 여느 때 읽던 소설과는 다른 느낌의 소설들도 있었고, 평소처럼 읽을 수 있는 소설들도 있었다. 짧게나마 읽었던 소설들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고, 3주차 과제에 충실하려 한다.
먼저 이승은 작가님의 <공포가 우리를 지킨다>이다.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게 무슨 내용일까' 였다. 외국 소설도 아닌데 등장인물의 이름이 머리 속에서 엉킨다. 수없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재정립하면서 읽어야 했다. 단편과 장편을 떠나서,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도 캐릭터가 머리에 자리하면 쉽게 등장인물들이 엉키지 않는데, 소설은 난해하고 어지러웠다. 제목처럼, 공포가 지켜낸 것은 무엇인지, 제목의 의미도 불분명하게 다가왔다.
전성태 작가님의 <상봉>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장편으로 발전하면 어떤 이야기들이 더 이어질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 소설이었다. 상봉한 북측의 동생은 친동생이 맞는 것인지, 고모부와 얽힌 다른 가족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것인지, 그 가족들이 주인공과 만났던 가족들은 아니었는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조해진 작가님의 <하나의 숨>. 어떤 소설을 리뷰할까, 하며 장류진 작가님의 소설과 끝까지 고민한 소설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계약직 교사와 취업을 나가 사고를 당한 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용이 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무력함이 내 몸과 감정을 장악해서, 그 감정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었다. 서울에서 진행된 저자와의 행사에 참여하지 못해 너무도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장류진 작가님의 <연수>. 작가님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최근 연말을 맞아 인터넷 서점에서는 한 해를 결산하는 기획들을 내 놓고 있다. 그 중 하나가 2019년을 대표하는 소설이나 도서에 대한 독자들의 투표를 받는 것이다. 작가님의 이름이 특이('류'자 덕분에)하기도 하고, 자주 추천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 제목도 낯설지 않아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의 같은 제목의 도서가 있어서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자기 인생을 살아 온 주인공이 뜻대로 하지 못하는 한가지가 운전이다. 그런 그녀가 운전을 하기 위해 연수를 받는다. 연수를 해 주는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소설의 내용이다. 주인공은 공부도 잘 했고, CPA도 합격해 회계법인에서 제법 위치도 잘 자리 잡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p.165)' 하지만, 지금보다 더 먼 미래는 알 수 없다. 연수 선생님이 좋은 회사를 다닌다고, 회사에서의 높은 위치에 여자들이 있냐고 물어보지만, 주인공은 거짓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연수를 받기 시작 전부터 마지막 연수를 받으면서 까지 주인공의 운전 실력과 함께 생각에도 변화는 있어 보인다.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혹은 바뀌지 않을런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주인공의 다짐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기쁨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질지도 모르겠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살아봐야 아는 것이다. 이번 연수를 통해 변화가 찾아 왔다면, 인생도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변화의 시점을 맞이할 것이다.
"내 오십 평생, 오늘이 가장 기쁜 순간이다."
CPA 합격발표가 났을 때 엄마가 내게 한 말이었다. 그전에도 엄마의 삼십 평생, 사십평생 가장 기쁜 순간들은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 내가 전교 일등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 입사할 때마다,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차례로 갱신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겨우 이런 일이,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 장류진, <연수>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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