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Novel

<바깥은 여름>, 김애란

by green_rain 2018. 8. 8.
728x90
반응형


  김애란이란 소설가를 알지 못한다. 최근에 소설을 읽은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과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정도이다. 두 소설가도 그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몰랐었다. 그렇게 최근에 인기있는 소설의 작가들을 알지 못한다.

  소설을 선택할 때, 내게 가장 큰 조건은 이미 알고 있는 작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등장하는 인기 소설들의 작가들을 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긴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 역시 베스트셀러에 오랜 기간 머문 소설이지만 알지 못했고, 그냥 제목이 마음에 들어 구입한 소설이다. 구입은 2월, 추운 겨울에 했다. 그런데 요즘처럼 더운 여름, 갑자기 책꽂이에서 제목이 확 눈에 들어 왔다.

  전체적으로 소설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주제가 뭔지 잘 모르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이 하나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많이 따라 다녔다. 의미를 찾기가 힘들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일지 모르겠다. 작가가 특별히 부여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건 왜 이럴까’, ‘이런 것도 무슨 의미가 있을텐데 왜 아무런 언급이 없이 소설이 끝나지’와 같은 궁금증들이 많았다. 그동안 너무 소설을 읽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드라마나 장편에 익숙해져 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조금 더 자주 읽어야겠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소설’이라고 말하고 다니던 나다. 그에 맞게 행동해야지.

「입동」
  어렵게 집을 장만했다. 어렵게 가진 아이와 함께 정착을 꿈꾸며 집을 가꿔 나갔다.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인해 아이를 잃었다. 정착되어 가던 공간이 낯설게 느껴진다. 11월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새로운 시작일줄 알았는데, 겨울로 들어서듯 새로운 어려움이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 22개월이다. 아이를 잃은 슬픔이 나오는 시점부터는 책을 덮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전염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움에서였다. 등장하는 부부의 삶이 나와 아내의 삶과 닮았다. 나뿐 아니라 주위의 많은 부부들도 닮았을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그들의 지난한 삶에는 슬펐지만, 주위의 시선들은 무서웠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사랑하는 형을 떠나보냈다. 곁에서 부모님을 뵈었다. 가족구성원을 잃은 가족의 슬픔을 알고 있다. 그 슬픔에 더해지는 주위의 무서움도 안다. 그 무서움이 ‘입동’이란 제목이 아닐까, 한다.

「노찬성과 에반」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찬성은 남겨진다. 할머니가 일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버려진 개를 데리고 와 키우면서 에반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에반은 병들어서 버려진 개였고, 병이 깊음을 알게 된 찬성은 에반을 안락사하기 위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렇게 모은 돈도 의미없이 에반은 사라졌다.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알게 되었고, 병이 힘듦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갖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망과도 싸워야 한다. 소유욕을 무시하기가 10살에게는 힘든 일이다. 에반을 위해 잘 버티다가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욕망과 절제의 싸움을 지켜보는 일이 쉽지 않다. 어린 소년이기에 절제가 무너져도 뭐라 할 수가 없다. 소년에게 바깥은 늘 한여름일 뿐이다. 한여름에 잠시뿐일 시원함일지라도, 그 소년이 그 시원함을 선택하는 것을 어떻게 뭐라 할 수 있겠는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아무것도 없을 뿐이다. 할 말도 당연히 없을 것 같고 말이다.

「건너편」
  도화와 이수는 연인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노량진에서 만났다. 경찰 공무원 시험에 먼저 합격한 도화와 달리 이수는 6년 동안 결실이 없어 그만두었다. 도화는 이수에게 크리스마스에 이별을 통보했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는 아니었다. 새로 알게 된 전세금 문제도 아니었다. 그냥 도화에겐 어떤 게 사라졌을 뿐이었다.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소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한 면을 보여준다. 미래가 불안한 젊은 세대들에게 공무원이란 직업은 직업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안정성을 상징한다. 도화가 가졌었던 이수의 그 어떤 것은 왜 사라지게 된 것일까. 불안함에서 오는 그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린 것이었을까. 난 후자 쪽이라 생각한다. 이수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더라도, 아니면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더라도, 둘 사이는 지금과 같았을 것이다. 사라져 버릴 것은 상황의 변화와 상관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사라져 버린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침묵의 미래」
  어려운 소설이다. 말,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라져 가는 말과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무슨 내용인지를 모르겠다.
  외로움 속에서 결국은 침묵을 맞이한다는 이야기일까? 읽는 내내 ‘뭐지, 계속 읽어야 하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주는 힘이 소설을 끌고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은 모르겠다. 아무것도. 제목과 글의 연관성도 모르겠고,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없이, 이렇게 소설을 쓴 것이 더 대단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풍경의 쓸모」
  정우는 시간강사다.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재혼을 한 아버지가 새어머니의 암 투병비를 위해 정우를 찾아왔다. 정우가 시간강사로 있는 대학의 학과장 곽교수는 음주 운전으로 한 소녀를 치게 되고, 정우가 곽교수 대신 운전을 한 거로 했다. 이후 그 대학의 교수 임용에 지원한 정우는 곽교수의 반대로 임용에서 떨어진다.
  나는 자꾸 의미를 찾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풍경의 의미를 찾고 있다. 정우가 모델인 사진의 풍경, 어머니가 모델인 사진의 풍경,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모델인 사진의 풍경. 그 풍경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제는 소설을 읽기도 어려워진다.

「가리는 손」
  재이는 다문화 가정 아이이다. 재이가 인형 뽑기를 하고 있던 편의점에서 학생들과 노인이 시비가 붙는다. 학생 중 한 명이 노인을 폭행하게 되고, 노인은 사망한다. 이 사건은 인근 주차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히게 되고, 이 동영상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사건에서 재이는 그냥 방관자로 등장한다. 처음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등장했을 때, 재이가 다문화 가정이라 겪는 이야기가 등장할 줄 알았는데, 이는 그냥 일부일 뿐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이든 그렇지 않든 그냥 요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은 본문 중에 한번 등장하는데, 재이에게 노인의 장례식장에 가보자며 이야기하는 화자를 통해서다. 아이에게 장례식장에서의 예(禮)를 알려주며 등장한다. 이는 요즘 아이들에게 어른 세대가 알려주어야 하는 예절인 것이다. 한편 우리 아이만은 뭔가 다른 착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부모들에게 알려주는 예절이기도 하다. 비웃음일지도 모를 표정을 놀람으로 해석하는 우리 부모들에게 말이다. ‘우리 아이만은’이 아니라 ‘내 아이라도’라는 마음으로 육아를 해야겠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명지와 도경은 부부사이다. 선생님인 도경은 제자를 구하다 제자와 함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이런 상화의 명지에게 스코틀랜드에 사는 명지의 사촌 언니가 한 달 동안 집을 비우며 와서 지낼 것을 권유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옛 친구인 현석을 만나고 돌아왔는데, 도경과 함께 세상을 떠난 제자의 누나가 편지를 보내왔다. 명지는 도경이 보고 싶다.

  상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가족의 부재는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공간이 바뀐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상실의 슬픔을 많이 희석할 수 있게 해주지만, 해결을 해주지는 않는다. 슬픔은 가시지 않고, 순간 순간 불쑥 불쑥 찾아온다.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어디로이든 방향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그냥 내가 견뎌 내야 하는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