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Novel

<빛의 과거>, 은희경

green_rain 2019. 12. 1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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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은희경 선생님의 소설을 언제 처음 읽었을까. 아마도 20대 초반이었을 것 같다. <새의 선물>이 처음 읽은 작품이었는데, 장군이로 기억되는 아이와 화장실 에피소드 부분 등 중간중간 키득거리는 재미가 있었던 소설이었다. 물론 공감이 가는 글귀도 많이 있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글이, 장례식장 부분이다. 자식의 부모의 죽음에 슬퍼하면, 주위에서 공감하며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슬픔이 지속되면 그 자식의 현실을 살펴보게 되는 장면이었는데, 왜 그때 그렇게 공감이 되면서 아직까지도 내 기억 속에 자리하는지는 모르겠다.

  그 뒤로 많은 작품들을 읽었다. 거의 모든 작품들을 찾아 읽고, 새로 나오는 소설들도 구입해 두었다가 꼭 챙겨 읽고는 했었다. <그것은 꿈이었을까>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도 예약도서로 구매를 해 두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창작과 비평 2019 겨울호> 클러버 활동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은희경 선생님 작가 조명란이 있었다. <빛의 과거>와 관련된 인터뷰인 것 같아서 그 부분을 읽기 전에 서둘러 소설을 읽었다.

  재밌었다. 최근에 발표되는 소설에서 키득거릴 수 있는 부분들은 특별히 없었던것 같은데, 재숙이가 무전여행을 하는 부분 등 이 책은 그런 부분들도 있고 뭔가 <새의 선물>과 비슷한 느낌이 느껴졌다. 진희의 성장소설과 비슷하게 이 책은 유경의 성장소설 청년 버전이라고나 할까. 

  한 여대의 기숙사 이야기와 그 기숙사 출신 두 친구의 현재 이야기가 그려지는 소설이다. 한정된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관계에 대한 미묘하고도 복잡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같은 팩트에 대한 시선의 차이와 다름이 어떤 결과로 귀결되고, 각자에게는 어떤 느낌들로 자리하는지를 다양하고도 입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굳이 여자 기숙사니까 그럴 것이다, 라는 생각은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사회라는 것이 조금 더 넓은 기숙사처럼 한정되기는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이 곳에서 성별에 대한 다름보다는 그냥 개개인의 다름이 강할 뿐이다.

  희진은 기숙사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소설가가 되었다. 그 내용 속에 유경은 좋은 모습은 아니다. 유경은 그 사실에 화를 내지도 않고, 희진과의 친구 관계도 유지한다. 나라면 가능했을까. 읽는 내내 드는 의문이었다. 둘의 관계가 가능한 걸까. 소설 속의 이야기에 맞는 부분들이 있더라도, 소설이 허구로 쓰여진 것일지라도, 친구의 성격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더라도, 나는 과연 관계 유지가 가능할 것인가.

  예전과 다르게 관계가 많이 좁아진 것을 확연하게 느낀다. 내쳐진 관계도 있을 것이고, 내가 끊어낸 관계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서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시간과 관계없이 내가 문제인 것인지 모르겠다. 과거에서 다름이 존재하듯 미래에도 여전히 다름은 존재할 것이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부터라도 다름의 폭을 넓힌다면 관계가 지금보다 조금 더 유연하게 확장되지 않을까, 재밌는 소설을 읽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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