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Essay

<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green_rain 2019. 11. 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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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편집장이 등장하곤 한다. 대부분 뭔가 편집증스러운 모습이었던것 같다. 그런데도 내게는 '편집장'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받는 히스테리적인 그림은 아니었다. 전문적이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소위 뭔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랄까, 그랬다. 이상적인 동경의 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꿈꿔 볼만한 대상이기는 했었다.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직업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제목이었다.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더군다나 그 직업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 히스테리적인 뭔가를 놓아버리는 걸까, 요즘 가끔 접하는 자기의 직업에서의 일탈을 이야기하는 걸까, 아닐것이다. 뭔가 애착을 갖고 있었던 직업에 대한 작별 인사처럼 느껴졌다. 고되고 힘들지만, 사랑하는 자신의 일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들도 느껴지고 말이다. 

 

  제목이 주는 이끌림으로 서평단에 지원해 보았다. 최근에 읽는 책들은 모두 서평단으로 참여해 읽게 되는 책들이다. 다소 강제적인 느낌으로 읽는 느낌이 있었다. 이번에도 책이 왔다. 꽤 두껍다. 읽기 시작하면서 강제적인 느낌은 이내 사라졌다. 책의 두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다. 기자들은 원래부터 글을 잘 쓰는 것인지, 오랜 세월 단련된 것인지, 제목의 직업에서 우러나오는 필력인 것인지 모르지만, 잘 읽힌다. 잘 읽힌다는 것은 재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기자의 삶을 모르고, 편집장이나, 출판 과정의 세계를 잘 모른다. 그런데도 글에 흡입력이 있다. 아! 내가 하는 일 중에 매달 발행되는 보고서의 편집 간사 일이 있다. 내 업무와 일간지 혹은 주간지를 견줄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몰입에 영향을 주었던것 같기도 하다.

 

  책은 한겨례신문사에서 기자, 편집자, 편집장으로 오랜 세월 근무한 저자의 이야기이다. 6개의 파트로 구분하여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파트 1은 토요판의 탄생이다. 한겨레신문에서 가장 먼저 토요판을 발행하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해 준다. 만든 사람들은 창조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련과 고됨이 있었겠지만, 독자들에게는 신선함과 재미로 다가왔을 것 같다. 공감했던 부분은 새로움이다. 정치나 사회에서 이슈되는 것들은 이미 다른 언론에서도 전할 것이다. 같은 사실을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언론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 한겨레를 택한 독자들은 한겨레의 시선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토요판에서 전한 새로운 이야기들은 한겨레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래서 독자들이 좋아했을 것 같다. 파트 2는 기획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도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일이 제일 버겁다. 새로워야 하고 의도와 결과도 있어야 한다. 하물며 에디터들에게는 기획이나 아이디어가 밥줄의 생명과도 같을 것이다. 파트 1의 토요판도 기획의 성공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그런 기획에 대해서 편집장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트 3은 재미와 충격이다. 기획에서 빠지면 안되는 제일 큰 요소가 '재미'일 것 같다. 그런 예로 쾌도난담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나꼼수'의 원형같은 기획이 이미 한겨레를 통해 시작되었었다니, 처음 알게 되었다. 

 

  파트 4는 현실적인 편집장의 고민 부분 같다. 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획이 큰 그림이라면, 구성은 그 디테일이다. 기획이 아무리 좋아도 디테일이 어설프면 기획은 망가져 버린다. 그런면에서 기획만큼이나 중요하고, 개인적으로는 편집장의 역량이 가장 크게 발휘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파트 5는 저자가 만난 다른 편집장들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GQ라는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이충걸과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잡지의 전반적인 느낌에서 '박애'가 느껴지도록 편집을 한다는 그의 인터뷰가 좋았고, 대단함이랄까, 편집장이라는 위치가 뭔가 큰 산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파트 6는 저자가 꼭 편집장의 위치에서가 아닌 기자나 언론 매체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두고 있다.

 

  내가 70년대 끝자락에 태어났으니, 신문 세대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그럼에도 신문이나 잡지를 많이 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각 신문들의 특징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은 재미있다. 편집장과의 인터뷰처럼 가끔 너무 그들만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꼭 언론이나 출판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편집장이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이 없다 해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앞에서 잠깐 언급한 글쓰기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기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가짜 뉴스와 찌라시가 만연한 요즘, 이게 기사냐 싶은 글들도 많지만, 몰입되는 기사를 접할 때도 많다. 이 책은 그런 필력으로 잘 기획되고 잘 편집된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제 '편집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금 더 복합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것 같다. 반갑다. 헬로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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